▲ 시인들이 올리는 고천제 2016.10.3. 한국작가회의 소속 임동확 시인을 비롯한 20여 명 시인들이 산황동 문학제를 마치고 고천제를 올렸다.
ⓒ 조정
거리에 버려져 고독사할 뻔한 노인을 따뜻한 방에 모시고 치료를 마친 후의 평화가 이런 것일까?
3회에 걸친 임시봉합, 접합수술, 봉합수술, 가지치기를 마친 후 가지마다 지지대를 받쳐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동의 느티나무가 안정을 되찾았다.
일산동구 산황산 자락에 있는 수령 650년 된 느티나무는 경기도 보호수 1호다. 밑동이 9.2m, 키가 12m나 되는 전국에서도 드물게 보는 노거수이다.
보통 지자체들은 수령 500년 안팎 노거수의 자녀목을 길러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를 지속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고양시는 일산동구 산황산 일부를 골프장으로 조성했다. 골프장 증설에 몰두한 나머지 시는 신목이 다 된 느티나무를 방치했다. 노거수로부터 150여 m 위치에 골프장이 들어온 후 골프장의 지하수 사용으로 자주 나뭇잎이 미발육 상태를 보여도 "나무와 지하수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주장했다.
골프장을 느티나무 30m 가까이 증설하겠다는 고양시와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치해온 지 6년인데, 지난 추석 전 불어온 태풍에 노거수의 주가지와 '용뿔' 가지가 부러지고 꺾이고 만 것이다.
산황동 느티나무 가지가 부러지다
▲ "용뿔 가지가 꺾였어요" 물관부만 남고 꺾였지만 사흘동안 잎사귀들이 생생했다. 현장에 있던 주민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했다.
ⓒ 조정
9월 8일 아침, 서해안을 타고 북상하던 태풍 링링은 드디어 고양시권에 도착했다. 링링이 공중을 한 번 휘돌 때마다 시청 안팎 나뭇잎들이 날아올랐다.
나뭇잎들이 검은 새 떼처럼 공중을 유영하다가 한 곳으로 세차게 몰려가 곤두박일 때의 풍속은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산황동 느티나무는 괜찮을까? 뭐 괜찮겠지, 650년 만고풍상을 버텨온 노장인데.'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9월 12일 오전 산황동 주민 미정 아빠가 문자를 보냈다.
"느티나무 가지 하나는 완전히 부러졌고 하나는 껍질이 아직 조금 붙어 있어요. 이거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공무원들이 자르라고 해요. 빨리 좀 와주세요."
400년은 된 주가지가 뭉텅 떨어져 이미 토막 쳐졌고, 주민들이 '용뿔'이라 부르는 가지는 한쪽 물관부만 붙은 채 꺾여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렸다.
"주민 센터, 구청, 시청 다 전화해도 서로 자기 담당 아니라고만 해요."
평소 보호수 가지에 지지대 세워 달라던 우리의 말을 듣지 않던 고양시의 오불관언이 부른 인재였다. 지역구 김경희 도의원과 김해련 시의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점심시간 후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고 고양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들, 시민들, 공무원 두 명이 현장에 왔다. 현장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 부러진 주가지를 봉합했다 9월 11일 임시 봉합해두었던 곳을 10월 22일 완전히 치료했다. 400년은 됨직한 가지가 부러진 후에야 옆 가지에 지지대를 세웠다.
ⓒ 조정
현장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명절 앞둔 실무자들 입장과 속히 돌봐야 할 가족 같은 생명체를 앞에 둔 입장이 부딪쳐 소란한 의사 소통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주민들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양보해주었다. 현장에 선 채로 이곳저곳 연락을 취하고 신속하게 필요한 일을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닥터가 왔고 크레인이 왔다. 부러진 가지의 잘린 밑둥을 소독하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임시로 봉하는 동안 크레인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꺾인 '용뿔' 가지의 접합수술은 이튿날 오전 8시에 시작하기로 약속했다.
용뿔이 살아났다
▲ 접합 수술 중 "나무가 살아나야 한다." 마을 주민, 고양환경운동연합 임원들, 공무원, 기술자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쳤다.
ⓒ 조정
추석 귀경 움직임이 시작된 9월 11일 오전, 우리는 느티나무 아래로 모였다. 다행히 날씨는 쾌청했다.
무게를 덜기 위해 잔가지들을 쳐내고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데 가지에서 '빠직' 소리가 났다. 놀란 이들이 "조심해" "살살"을 외쳤다. 오전 8시에 시작한 접합 수술이 오후 12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나무 위, 크레인 위, 나무 아래에서 10여 명이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마음을 졸이며 일할 때 마을 할머니들은 '저게 잘 되려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들어 올린 가지 단면에 소독약을 바르고 접합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밧줄을 묶고 깔끔하게 마무리된 나뭇가지는 언제 꺾였을까 싶게 멀쩡해졌다.
달나라 가는 일만큼이나 나무를 되살리는 의술도 대단했다. 고생한 공무원, 노동자들, 주민들, 고양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들이 서로를 칭찬하며 '용뿔'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나무야 힘을 내다오'라는 기원을 품고.
▲ 일단 수술은 끝났다 달나라 가는 기술보다 우리에게는 나무 접합 기술이 더 위대해 보였다. 접합 수술 직후 기뻐하는 주민들과 관계자들.
ⓒ 조정
추석 연휴 지나 용뿔의 생사를 확인하러 가는 날은 조금 초조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공연한 걱정이었다.
접합 수술한 가지의 잎사귀들이 생생한 초록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는 게 아닌가. 살아난 것이다.
공무원들은 봄까지 지켜봐야 안다지만 마을 주민들은 "저 정도면 죽을 일은 없어"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말수가 적은 주민도 환한 얼굴로 "오늘 하루를 살다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라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 봉합수술 마친 주가지 밑둥과 느티나무 좌측 모습 주가지가 부러져 가운데가 뭉툭해진 느티나무.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늦게나마 곁가지에 지지대를 설치해서 다행이다.
ⓒ 조정
▲ 가지치기와 지지대 설치까지 마친 느티나무 (우측) 꺾였던 용뿔은 접합 수술 후 40여 일이 지난 현재 살아났다.
ⓒ 조정
지자체 수장들을 대상으로 행정 감수성을 측정한다면 고양시장은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수백 년 역사를 배경으로 고양시 도심에 살아남은 마을 공동체의 환경 공익성을 외면하는 고양시장이 느티나무의 팔 하나 살아난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쁜 주민들과 공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이번 느티나무 복원에 고양시 공무원들이 노력해준 점을 고맙게 여긴다. 앞으로는 '보호수를 보호수답게 관리할 계획'이라니 기대해본다. 큰 팔 두 개를 태풍에 자르면서 근원적인 보호를 불러낸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지혜가 산황산을 살릴 것이라고 기대해 보기도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속담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 아닌가 싶다. 산황동 주민들과 이웃 마을 시민들은 이제 느티나무 할아버지 회복을 기념하는 고천제를 준비하고 있다. 손 없는 날이라는 11월 5일 오전 11시에 느티나무 할아버지와 고양시민들이 가을볕 가득한 마을 잔치를 벌일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고양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블로그를 비롯한 고양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계정에 동시 게시됩니다.
▲ 시인들이 올리는 고천제 2016.10.3. 한국작가회의 소속 임동확 시인을 비롯한 20여 명 시인들이 산황동 문학제를 마치고 고천제를 올렸다.
ⓒ 조정
거리에 버려져 고독사할 뻔한 노인을 따뜻한 방에 모시고 치료를 마친 후의 평화가 이런 것일까?
3회에 걸친 임시봉합, 접합수술, 봉합수술, 가지치기를 마친 후 가지마다 지지대를 받쳐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동의 느티나무가 안정을 되찾았다.
일산동구 산황산 자락에 있는 수령 650년 된 느티나무는 경기도 보호수 1호다. 밑동이 9.2m, 키가 12m나 되는 전국에서도 드물게 보는 노거수이다.
보통 지자체들은 수령 500년 안팎 노거수의 자녀목을 길러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를 지속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고양시는 일산동구 산황산 일부를 골프장으로 조성했다. 골프장 증설에 몰두한 나머지 시는 신목이 다 된 느티나무를 방치했다. 노거수로부터 150여 m 위치에 골프장이 들어온 후 골프장의 지하수 사용으로 자주 나뭇잎이 미발육 상태를 보여도 "나무와 지하수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주장했다.
골프장을 느티나무 30m 가까이 증설하겠다는 고양시와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치해온 지 6년인데, 지난 추석 전 불어온 태풍에 노거수의 주가지와 '용뿔' 가지가 부러지고 꺾이고 만 것이다.
산황동 느티나무 가지가 부러지다
▲ "용뿔 가지가 꺾였어요" 물관부만 남고 꺾였지만 사흘동안 잎사귀들이 생생했다. 현장에 있던 주민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했다.
ⓒ 조정
9월 8일 아침, 서해안을 타고 북상하던 태풍 링링은 드디어 고양시권에 도착했다. 링링이 공중을 한 번 휘돌 때마다 시청 안팎 나뭇잎들이 날아올랐다.
나뭇잎들이 검은 새 떼처럼 공중을 유영하다가 한 곳으로 세차게 몰려가 곤두박일 때의 풍속은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산황동 느티나무는 괜찮을까? 뭐 괜찮겠지, 650년 만고풍상을 버텨온 노장인데.'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9월 12일 오전 산황동 주민 미정 아빠가 문자를 보냈다.
"느티나무 가지 하나는 완전히 부러졌고 하나는 껍질이 아직 조금 붙어 있어요. 이거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공무원들이 자르라고 해요. 빨리 좀 와주세요."
400년은 된 주가지가 뭉텅 떨어져 이미 토막 쳐졌고, 주민들이 '용뿔'이라 부르는 가지는 한쪽 물관부만 붙은 채 꺾여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렸다.
"주민 센터, 구청, 시청 다 전화해도 서로 자기 담당 아니라고만 해요."
평소 보호수 가지에 지지대 세워 달라던 우리의 말을 듣지 않던 고양시의 오불관언이 부른 인재였다. 지역구 김경희 도의원과 김해련 시의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점심시간 후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고 고양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들, 시민들, 공무원 두 명이 현장에 왔다. 현장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 부러진 주가지를 봉합했다 9월 11일 임시 봉합해두었던 곳을 10월 22일 완전히 치료했다. 400년은 됨직한 가지가 부러진 후에야 옆 가지에 지지대를 세웠다.
ⓒ 조정
현장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명절 앞둔 실무자들 입장과 속히 돌봐야 할 가족 같은 생명체를 앞에 둔 입장이 부딪쳐 소란한 의사 소통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주민들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양보해주었다. 현장에 선 채로 이곳저곳 연락을 취하고 신속하게 필요한 일을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닥터가 왔고 크레인이 왔다. 부러진 가지의 잘린 밑둥을 소독하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임시로 봉하는 동안 크레인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꺾인 '용뿔' 가지의 접합수술은 이튿날 오전 8시에 시작하기로 약속했다.
용뿔이 살아났다
▲ 접합 수술 중 "나무가 살아나야 한다." 마을 주민, 고양환경운동연합 임원들, 공무원, 기술자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쳤다.
ⓒ 조정
추석 귀경 움직임이 시작된 9월 11일 오전, 우리는 느티나무 아래로 모였다. 다행히 날씨는 쾌청했다.
무게를 덜기 위해 잔가지들을 쳐내고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데 가지에서 '빠직' 소리가 났다. 놀란 이들이 "조심해" "살살"을 외쳤다. 오전 8시에 시작한 접합 수술이 오후 12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나무 위, 크레인 위, 나무 아래에서 10여 명이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마음을 졸이며 일할 때 마을 할머니들은 '저게 잘 되려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들어 올린 가지 단면에 소독약을 바르고 접합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밧줄을 묶고 깔끔하게 마무리된 나뭇가지는 언제 꺾였을까 싶게 멀쩡해졌다.
달나라 가는 일만큼이나 나무를 되살리는 의술도 대단했다. 고생한 공무원, 노동자들, 주민들, 고양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들이 서로를 칭찬하며 '용뿔'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나무야 힘을 내다오'라는 기원을 품고.
▲ 일단 수술은 끝났다 달나라 가는 기술보다 우리에게는 나무 접합 기술이 더 위대해 보였다. 접합 수술 직후 기뻐하는 주민들과 관계자들.
ⓒ 조정
추석 연휴 지나 용뿔의 생사를 확인하러 가는 날은 조금 초조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공연한 걱정이었다.
접합 수술한 가지의 잎사귀들이 생생한 초록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는 게 아닌가. 살아난 것이다.
공무원들은 봄까지 지켜봐야 안다지만 마을 주민들은 "저 정도면 죽을 일은 없어"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말수가 적은 주민도 환한 얼굴로 "오늘 하루를 살다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라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 봉합수술 마친 주가지 밑둥과 느티나무 좌측 모습 주가지가 부러져 가운데가 뭉툭해진 느티나무.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늦게나마 곁가지에 지지대를 설치해서 다행이다.
ⓒ 조정
▲ 가지치기와 지지대 설치까지 마친 느티나무 (우측) 꺾였던 용뿔은 접합 수술 후 40여 일이 지난 현재 살아났다.
ⓒ 조정
지자체 수장들을 대상으로 행정 감수성을 측정한다면 고양시장은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수백 년 역사를 배경으로 고양시 도심에 살아남은 마을 공동체의 환경 공익성을 외면하는 고양시장이 느티나무의 팔 하나 살아난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쁜 주민들과 공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이번 느티나무 복원에 고양시 공무원들이 노력해준 점을 고맙게 여긴다. 앞으로는 '보호수를 보호수답게 관리할 계획'이라니 기대해본다. 큰 팔 두 개를 태풍에 자르면서 근원적인 보호를 불러낸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지혜가 산황산을 살릴 것이라고 기대해 보기도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속담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 아닌가 싶다. 산황동 주민들과 이웃 마을 시민들은 이제 느티나무 할아버지 회복을 기념하는 고천제를 준비하고 있다. 손 없는 날이라는 11월 5일 오전 11시에 느티나무 할아버지와 고양시민들이 가을볕 가득한 마을 잔치를 벌일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고양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블로그를 비롯한 고양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계정에 동시 게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