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5 오마이 뉴스 기사

관리자 0 4,322 2016.12.12 15:17

지금 있는 것도 없애야 할 판에 더 늘리겠다는 게 말이 돼요? 그렇게 되면 여긴 아무도 못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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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의 얼굴이 상기됐다. 들고 있던 호미를 밭둑에 꽂으며 던진 아주머니의 말은 '호러'다.

 

"지금도 여기까지 골프공이 날아와요. 이 근처 돌아다니다 보면 한 바구니는 주울 걸요."

 

최근 골프장 증설문제로 시끄러운 곳,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동의 한 마을 주민 목소리다. 도심의 농촌마을, 산황동은 지금 봄맞이 할 여유가 없다. 2010년 만들어진 9홀짜리 골프장(스프링힐스)이 곧 18홀짜리로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 측이 낸 도시관리계획변경(그린벨트 내 체육시설 설치 등) 신청을 작년 5월 고양시가 받아들였기 떄문이다.

 

100년 이상, 3~4대째 구릉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는 산황동 마을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상황. 앞산이 깎여나가고 내 집 앞마당까지 골프장 잔디가 깔리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 산황동 마을에서 골프장 부지와 가장 가까운 집. 증설되는 스프링힐스 골프장과 이 집과의 거리는 불과 10m 남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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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가꾸던 마을

 

'황토산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산황동. 이 마을은 예로부터 질 좋은 채소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황토에서 자라는 산황동 채소는 도시에서 웃돈을 주고 사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가 지난 2010년 9홀짜리 스프링힐스 골프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산황동 채소의 판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로컬푸드 납품이 그때부터 끊긴 거예요. 골프장에서 날아오는 농약이 채소에 묻어있을 거기 때문에…."

 

산황동 주민 ㄱ씨는 집 앞까지 골프장이 내려오면 생업인 농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스프링힐스 골프장은 산황동 구릉산(안산)의 북쪽에 해당하는 23만 제곱미터 규모다. 골프장 측의 계획대로 9홀짜리를 18홀(약 50만 제곱미터)로 늘리면 산황동 녹지(안산)의 대부분이 깎여나간다.

 

▲ 조정 고양환경운동연합 고문(맨 왼쪽)이 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 당원들에게 골프장 증설 허가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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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영향평가서에 집이 두 채뿐이라고?

 

실상은 어떨까? 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위원장 신지혜)는 고양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지난 3월 22일 산황동 실태조사를 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은 골프장 증설 계획이 알려진 초기부터 줄곧 이 문제를 제기해온 지역시민단체.

 

스프링힐스 골프장은 고양시 식사동에서 원당중학교 앞을 지나 고양시청으로 가는 고양대로 변에 있다. 식사교차로에서 원당중학교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골프장 입구 표석이 보인다.

 

오전 10시. 우리는 스프링힐스 골프장 정문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황동 마을까지 걸어 들어가면서 증설예정 부지를 돌아봤다. 골프장과 마을을 분리하는 가림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 분 걷자 이내 양쪽으로 밭이 펼쳐진다. 봄 농사 채비가 한창이다. 퇴비냄새가 날린다.

 

"골프장 측이 낸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는 골프장 인근 마을에 가옥이 2채 뿐이라고 돼 있어요.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 마을회관 주변만 해도 20여 채가 넘어요."

 

▲ 현재 9홀로 운영되고 있는 스프링힐스 골프장 옆길. 길 왼쪽이 골프장, 오른쪽이 마을과 밭이다. 낮은 철망과 가림나무 외에는 안전시설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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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고양환경운동연합 고문은 골프장 측의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은 '한마디로 엉터리'라고 말한다. 조 고문은 "제대로 된 실사 없이 증설허가를 내준 고양시 역시 부실행정의 표본"이라고 지적한다. 이 부분은 작년 11월 26일 열린 고양시의회 환경경제위원회 행정감사에서도 지적이 있었다. 조 고문은 "당시 김경희 시의원의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부실 지적에 고양시 환경보호과는 '시에서 실사를 할 의무는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한다.

 

골프장 측 역시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창식 스프링힐스 대표는 24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꼼꼼히 읽어보지 못해 증설부지 주변 가옥의 실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다만 골프장 증설 후 비산농약이나 빛 공해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는 최소화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을회관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산황동 표석이 보인다. 우리는 표석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들어 갔다. 원 산황동 마을이 나온다. 마을 한가운데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두 팔이 거칠게 축 늘어져 있다.

 

수령 650년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고려 말 무학대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 뒤쪽으로도 집들이 얼핏 10여 채는 돼 보인다. 느티나무 주변과 마을 담벼락에는 골프장 증설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 산황동 마을회관. 골프장 증설부지 남쪽 끝과 거의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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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은 녹지가 아니다"

 

밭일하던 주민 정한식(60)씨가 조정 고양환경운동연합 고문을 반겼다. 이들은 그간 골프장 증설반대 운동을 해 오면서 서로 연대의식을 쌓았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아오고 있다는 정한식씨는 골프장 증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걸 넘어 사람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 수령 650여년으로 추정되는 상황동 느티나무. 무학대사가 고려 말에 심었다고 전해오는 이 느티나무 뒤로도 집들이 10여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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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없어지면 사람들 정서가 망가져요. 지금도 돈 몇 푼에 사람들이 점점 독해지잖아요. 그나마 숲이 있고, 그 속에서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는데…. 인공 숲이 자연숲을 대신할 수 없거든요."

 

정씨의 걱정은 좀 더 먼 곳에 가있었다.

 

"산황동 구릉산(안산)을 갖고 있는 외지 사람들 입장에서야 골프장 측에 돈 받고 팔아버리면 그만이지요. 그때는 우리 생존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다 자라는 20년, 30년 후가 더 걱정입니다. 애들이 어떤 정서를 갖고 크겠어요?"

 

▲ “제가 어릴 때 친구들과 놀던 바위입니다.” 마을주민 정한식 씨(맨 왼쪽)가 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 당원들에게 골프장 부지로 예정된 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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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제법 따갑다. 정오가 지나고 있다. 우리는 옛 산황동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소달구지 길을 따라 산을 가로질러 다시 골프장 정문 앞으로 돌아 나왔다. 산황동 봄 언덕(스프링 힐스) 아래에는 사람들과 소쩍새가 살고 있다.

 

'골프장=공익시설'은 위헌... 고양시장이 직권해제 해야

고양시환경운동연합은 '산황동 스프링힐스 골프장 증설은 생명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악행'이라고 주장한다. 골프장을 짓는 건 가장 나쁜 방법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홀로 운영 중인 스프링힐스 골프장은 지금도 인근 마을주민들의 생업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골프장에서 뿌려대는 농약은 주변의 집과 논밭으로 날아간다. ▲골프장은 또, 그린(잔디)을 곱게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지하수를 끌어 써야 하는데, 이는 곧 농업용수 고갈로 이어진다. 게다가 ▲밤 10시까지 켜져 있는 골프장의 조명은 인근 농작물에게 직접 영향을 줘서 생육을 방해한다. 이 밖에도 간혹 ▲마을 안까지 골프공이 날아와 주민들을 다치게 하거나 재산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린벨트 지역에 골프장 허가가 날 수 있었을까? 현행법상으로 골프장은 '공익시설'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이 공익시설? 언뜻 이해가 안 되겠지만, 골프장은 지금 법적으로 공익시설이다. 따라서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린벨트의 용도변경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업자는 부지의 80% 이상을 매입하고, 땅주인 1/2의 동의를 얻으면 나머지 20%의 땅을 강제수용 할 수 있다. 골프장이 공익시설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다.

 

다행히 지난 2011년 6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골프장이 공익시설이라는 법의 위헌성을 인정하고, 토지강제수용은 안된다고 판단하긴 했다. 그러나 아직은 기존 법(국토계획법)이 고쳐지지 않고 계속 유예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한국에는 땅을 뺏기고 내쫓기는 농민과 마을주민들이 있다. 이들의 피를 빨면서 살찌고 있는 건 당연히 골프장 사업자들. 그런데도 골프장은 공익시설이다. 산황동 스프링힐스 골프장이 시민단체들과 주민들의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증설을 밀어붙이려는 것도 '골프장=공익시설'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현재 골프장 측이 어느 정도의 부지를 매입했고, 얼마나 많은 땅주인의 동의를 얻었는지는 모른다. 골프장 측은 일단 여론에 떠밀려 애초 2월에 착공하려던 증설공사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단계라는 게 마을주민들과 고양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이다.

 

산황동 스프링 힐스 골프장 증설계획을 백지화 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고양시장이 직권으로 사업계획을 반려하는 것이다. 선례가 있다. 2012년 4월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계획을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이 직권해제 했다. 유권자인 고양시민들의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2300

2015.03.25 김동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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