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흐르는 임진강

관리자 0 6,421 2017.01.08 13:42
작성자이중희작성일2014-06-16조회수1312
제 목말없이 흐르는 임진강..

지난 5월 31일, 아침 일찍 버스는 덕양구청과 일산동구청 앞에서 고양환경운동연합 이우림 교육위원, 그리고 남녀노소 여러 회원을 태운다. 다시 버스는 파주로 향해 파주환경운동연합 회원들까지 마저 태우고 DMZ 남쪽 군사 지역 초소에 도착한다. 몇 년 전 개성공단을 방문했을 때처럼 사전신고를 했음에도 삼엄한 경계 속에 방문객 하나하나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DMZ 출입을 허가한다. 소홀함 없이 맡은 임무 철저히 수행하는 국군이 믿음직스럽다.

 

버스는 DMZ 안에 있는 임진강 언저리 덕진산성으로 향한다. 가는 길, 민통선 안에 작은 건물들이 더러더러 보이지만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이따금 마을 주민들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와 군용차량이 오가지만 적막 그 자체다. 버스 안, 파주환경운동연합 정명희 사무국장은 마이크를 들고 주변 풍경과 우리가 가야 할 덕진산성에 대해 설명하고 내 옆자리에 앉은 파주환경운동연합 조영권 의장께서 틈틈이 보충 설명을 해주신다.

 

덕진산성 들어가는 입구엔 온갖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탐방객들은 지느러미엉겅퀴 꽃이 무리 지어 핀 것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정겹다. 뽕나무로 눈길이 간다. 새카맣게 익은 오디들이 탐스럽다. 먹는 것인 줄 모르는 아이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오디를 아는 어른들은 몇 알씩 따 입에 넣는다. 고라니 똥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설마 이 아이들 먹거리를 우리가 빼앗아 먹는 것은 아니겠지?

 

그다지 높지 않은 곳인데도 더운 날씨 탓인지 모두 힘들어한다. 아카시 나무 우뚝 서 있는 언덕배기에 다다라 땀을 식힌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자리에서 노현기 임진강 생태보전 국장은 부근에 서식하는 곤충을 채집해 설명한다. 뒤를 이어 정명희 사무국장은 임진강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해준다. 그 이야기 속에는 걱정이 한아름 섞였다. 자연 그대로 굽이굽이 흐르는 임진강이 훼손될 위기라는 것이다.

 

파주시는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4대 강처럼 습지를 걷어내고 반듯한 물길로 만들겠다 한다. 홍수를 대비한다는 얘기이다. 실제 1999년 홍수는 문산천이 넘쳐 일어난 것인데 임진강에 삽질하겠다는 것이다. 그 습지는 민통선 사는 사람들이 무농약 청정 쌀농사를 짓는 곳이고 봄부터 가을까지 참개구리 등 온갖 습지 생물들의 삶 터가 되며 겨울이면 먼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들의 휴식터가 되는 곳이건만 이를 없애겠다는 거다. 그뿐인가? 임진강 하류에 살짝 허리 내민 장단반도의 습지까지 토목공사의 대상이라 한다. 독수리가 날아오고 두루미가 머무는. 뭇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을 휘저어 치적 쌓겠다는 근시안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덕진산성 휘돌아 가는 길, 사람 키보다 더 큰 마른 풀대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작년에 자랐던 생태계 교란종인 단풍잎돼지풀이다. 그 마른 대 주변엔 올해 싹튼 놈들이 빼곡히 자란다. 어느새 이곳 민통선까지 들어와 씨를 퍼뜨리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임진강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강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섬, 초평도도 보인다. 그곳엔 빼곡한 버드나무와 미루나무, 무성한 풀들로 덮여있다.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위안이 된다.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민통선 내 백연리라는 마을 부녀회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한다. 마을로 들어서자 익숙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집집이 태극기 하나씩 걸려 있고 꽃담 옆엔 빨간 우체통도 하나씩 서 있다.

 

시장이 반찬이다. 모두 허겁지겁 잘 먹는다. 동동주도 판다. 하지만 찌는 더위에 더위 하나 더 얹을 필요 있을까? 건장한 남자 어른들마저 동동주 마시는 걸 사양한다.

 

제비집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잘 볼 수 없는 제비들이 높은 천정에 집을 짓고 갓 깬 새끼들을 키운다. 얼마 만에 보는 제비였던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니 겁이 난 모양이다. 부산하게 옮겨 다니며 경계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자리를 피해준다.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군 관계 사정으로 장단반도에 들어갈 수 없단다. 민통선을 나와 장단반도가 보이는 황희선생 유적지로 향한다. 바로 앞에 임진강이 흐르고 그 건너 멀리 넓은 습지가 보인다. 앞서 말했던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곳이다. 다시 한 번 정책 입안자들의 무지에 화가 난다. 아름다운 국토, 그나마 크게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임진강이 또다시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 사람들은 말없이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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