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8일 북한산성의 역사 강좌와 함께 한 산행.

관리자 0 5,969 2017.01.07 16:22
작성자사무국작성일2006-11-02조회수1790
제 목[산모임] 2006년 10월 28일 북한산성의 역사 강좌와 함께 한 산행.
"2006년 10월 28일 고양환경운동연합 산행모임에 참가했습니다. 김성호 전 상임의장님께서 북한산성과 고양시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가을산에 들었습니다. 북한산의 명칭을 삼각산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곤 하는데 그건 북한산의 말뜻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한국이라고 부르는데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국호의 뜻을 보면 한이라고 하는 뜻은 몽골에서도 징기스 칸이라고 하는데 ‘징기스’는 우주, ‘칸’은 지배자입니다. ‘칸’이 다스리는 나라는 ‘칸국’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칸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뜻으로서 한이라고 하는 한자에는 뜻이 없고 음이 변해서 그 지배자가 사는 곳의 북쪽의 산이 바로 북칸산이라고합니다. 남쪽은 ‘남칸산’, 가운데 흐르는강은 ‘칸강’이겠죠. 그래서 우리나라 전역의 도읍이 있던 곳에 흐르는 강은 한천이나 변해서 탄천이라고 합니다. 북한산은 명산입니다. 수도가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데 김신조라고 하는 간첩이 우리나라에 와서 청와대를 향해갈 때 이 길을 통해갔답니다. 그 이후에 군부대가 주둔하며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국립공원이 되면서 군부대가 나갔지만 이곳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주민들은 내보낼 수 없었고, 식당의 환경오염행위를 막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백두대간 한북정맥은 감악산에서 북한산까지 오고, 북한산 북쪽엔 도봉산이 있습니다. 한줄기는 남쪽으로 백악산으로 흐르고 다른 한줄기는 연신내를 지나 역촌동 뒤의 응봉(매봉)을 지나 한강으로 떨어집니다. 또 한줄기는 한미산이라고 불리는 할미산으로 흐르는데 마고할미라는 창조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산을 노고산이라고 합니다. 서울 노고산, 지리산 노고단 등은 마고할미 전설과 연관이 있다고 하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북한산성 안에는 절이 13개나 있습니다. 임금이 여름에 피서를 오기도 했고, 전란이 있으면 피난을 오기도 했는데 임금이 있던 곳을 둘러싸고 금위영이라는 어용군들이 사는 곳이 있었고 임금이 기도하러가는 절인 부황사는 북한산이 전부 보이는 명당입니다. 중흥사는 승군이 있었던 곳. 승군의 사령부. 중흥사 건너편엔 무법대. 노적봉 아래에 무법대, 식량창고를 지었는데, 노적가리가 쌓여있어서 노적봉이라고 한다. 북한산성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대서문에 도착했습니다. 대서문은 북한산성의 출입구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북한산성이 백운대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이 부근에서 산의 허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성의 모양을 보면 어느 나라의 성인지 알 수 있는데, 북한산성은 고구려군들이 문산을 지나 고양시를 지나 수도를 향해 쳐들어 올 때 그 군대를 방비하기 위한 성으로 쌓은 것입니다. 그 당시의 성은 석성이 아닌 토성이었다고 합니다. 한 켜는 흙, 한 켜는 모래, 한 켜는 갈대 등을 넣고 통나무로 다져서 만들었으므로 토성이 석성보다 훨씬 강하다고 하니 성의 견고함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성과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석성에 사용한 우리나라의 돌은 거의 화강암으로 우리나라의 석축기술과 산성의 형태, 명칭을 보면 산성의 맨 위의 돌담장은 ‘여장’ 그 밑의 석축은 ‘성’ 구멍은 활을 쏘기 위한 ‘사구’라고 부릅니다. 건축양식으로 익공법을 이용하였는데 왕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익공을 두 개씩 내 놓았다고 성벽의 돌들이 모두 네모반듯하지 않고 중간에 하나씩 튀어나와 있는데 이것은 견고하게 하기위한 방법이며 지붕 제일 윗부분의 망새는 우리나라의 상징인 봉황의 깃털모양인데,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용이 되었다고 하니 의미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선조들의 세심한 배려와 과학적인 건축방법, 상징성까지 모두 의미 있는 유적아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을 낙엽이 도시락으로 뚝뚝 떨어지는 비석거리 위쪽 계곡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습니다.김성호선생님의 역사 강의에 반하신 두 분의 산사람이 합류하여 행궁지 터에 이르렀습니다. 임금이 있는 곳은 천연적인 숲이나 누각을 지어 건물을 막았는데 절의 대웅전 앞을 가로막는 누각과 같은 의미인데, 내부의 기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숙종 때 지어 주로 피난을 왔었고, 문고가 있기도 했는데 그 당시의 문고는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있는 문고들 중에는 약탈당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북한산성이 백제 때 지은 성이라는 내용이 남이 있는 ???를 살펴보고 금위영터에 이르러 북한산의 웅장함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금위영터는 지금은 약간의 성벽과 배수구 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옛날에는 큰 건물들이 있던 곳이라고 하며 금위영터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높은 곳이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동장대 봉우리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 중성문에 닿았습니다. 중성문의 성벽이 허술한 이유는 대 홍수때 무너졌기 때문이며 옛날의 성은 훨씬 견고했다고 합니다. 이 성을 쌓은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사이의 매개인 낙랑국이 멸망하고, 서로 접경을 이루어 위험해졌기 때문이며 성벽에 나와 있는 구멍은 빗물이 성벽을 타고 흐르지 않도록 배수를 위한 구멍이라고 하니 조상들의 건축법은 역시 감탄이 흘러나옵니다. 성문에 나있는 구멍은 한국전쟁 때 군인들이 쏜 총 자국이고 지금은 지워졌지만 ‘때려잡자 김일성’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고 하셔서 모두 웃었습니다. 중성문을 지나 대남문으로 오르면서 계곡 곳곳의 단풍나무는 사진이나 뉴스에서 소개 되던 빨간 단풍잎처럼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함께 오르던 아줌마 회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제가 보기에도 자연의 색깔은 인간의 재능으로는 흉내 낼 수 없을 듯 합니다. 아이들과 저는 어른들 일행을 버리고(?) 먼저 대남문에 도착하였습니다.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와 오르막길에서 흘린 땀을 식혀주었습니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듯했는데... 어른들이 도착하셨고 까마귀는 길조인데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잘못 인식된 것이라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청수동 암문을 지나 천연원시림으로 일반 등산객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삼천사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재미있는 역사 강의에 마음들을 빼앗겨서 시간이 많이 지나 짧은 가을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바빠진 일행들은 발길도 바빠지고 선두팀은 서둘러 삼천사를 향해 하산하였습니다. 5살짜리 지윤이는 박평수위원장님 등에 업히고 어둑어둑한 산길에서 우리들은 동물적 감각을 되살려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드디어 반가운 불빛이 보이고 삼천사에 도착해서 마신 약수물은 꿀맛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들을 위해 열강 해 주신 김성호선생님! 역사책과 교과서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을 북한산성 강의를 들으며 새롭게 알고 이해하는 기회였습니다. 정말 재미있었고 고맙습니다.-일산동중 2학년 고석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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